얽힌 매듭 풀기: ‘투트랙 전략’ 쓰자 -주간동아(01.28)
노광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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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1 10:07
얽힌 매듭 풀기 : ‘투트랙 전략’ 쓰자
-국정조사와 제3의 중재기구 타협으로 마주 달리는 기관차 멈춰야-
노광표(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쌍용자동차(쌍용차) 사태가 3월 1일자로 무급휴직자 455명을 복직시키기로 해 중대 고비를 맞았다. 집권 여당과 회사 측은 이번 복직을 계기로 정치권이 개입하는 국정조사나 철탑농성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야당과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는 무급휴직자 복직은 환영하지만, 국정조사와 복직은 별개 사안인 만큼 국정조사를 즉각 실시해야 한다고 맞선다.
무급휴직자 복직은 지난 3년 반 동안 정리해고자들의 투쟁과 일반 국민의 성원이 없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었던 결과물로, 난마처럼 얽힌 쌍용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 불씨다. 그러므로 무급휴직자 복직 결정을 국정조사 회피를 위한 ‘꼼수’로 폄하할 필요도 없고, 해결 종착지로 확대 해석해서도 안 된다.
‘마주 달리는 기관차’처럼 첨예하게 맞선 쌍용차 사태의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필자는 사태 해결 방안으로 투트랙(two-track) 전략을 제안한다. 하나는 국정조사를 통한 진실규명이며, 다른 하나는 제3의 중재기구를 통한 사회적 타협이다. 무엇 하나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우회할 길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진실규명이 타협 출발점
진실규명은 노사 간 타협의 출발점이다. 고착화한 적대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노사정 간 신뢰 회복이 필수다. 투자가 절박한 시기에 국정조사를 벌이면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 부각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미래로 나아가려면 과거를 매듭져야 한다. 2009년 8월 정리해고는 단순히 지나간 과거가 아닌, 현재 삶과 연계돼 있다. 무급휴직자 복직이 확정됐지만, 희망퇴직자 1904명과 정리 및 징계해고자 203명이 공장 밖을 배회한다. 15만V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한가운데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 3명은 목숨을 건 농성을 벌이고 있다.
쌍용차 사태에 대한 진실은 규명되지 않은 채 노사 간 지루한 공방만 계속되고 있다. 2012년 국회 청문회를 통해 정리해고 근거였던 경영 악화 상황을 부풀리거나 의도적으로 기획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는 국정조사를 통해 제기된 야당과 노조 측만의 주장이 아닌,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오욱환)가 100여 일 동안 조사해 밝혀낸 중립적인 조사 결과다.
관련 보고서는 “그동안 쌍용자동차 경영진이 전면 부인해오던 유동성 위기 문제와 유형자산 손상차손을 통한 회계조작 의혹에 대해 당시 대주주였던 상하이차는 유동성 위기 극복 노력을 회피했고, 회사는 회생절차를 처음부터 기획했으며, 그 과정에서 과다한 유형자산 손상차손의 계상이 추정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회생절차 내에서 긴박한 경영상 위기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자료를 구비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긴박한 경영상 위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 법원 역시 회사 및 회계법인이 만들어낸 수치와 보고서만을 근거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지 여부를 심리하지 않고 정리해고의 실제적 요건을 쉽게 인정해버리는 오류를 범했다”며 정리해고에 문제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결론적으로 쌍용차 구조조정이 적법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존엄성이 심각하게 침해됐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억울하게 고통당한 해고노동자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쌍용차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도 국정조사는 필요하다.
국정조사는 대량 정리해고가 빚은 사회적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태 원인을 진단하고 잘못을 규명해야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머무르지 않고 국정조사는 쌍용차의 경영 정상화를 북돋워줄 수 있는 노사정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장이 돼야 한다. 쌍용차를 위해 국가가 지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범국가적 차원에서 해고노동자의 재취업과 생계유지 방안, 노동자와 그 가족의 심리치유에 대한 체계적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국정조사를 실시하면 철탑농성자들도 농성을 해제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쌍용차 사태는 사회적 문제
또한 제3의 중재기구를 통한 사회적 타협이 필요하다. 쌍용차 같은 장기 분규 사업장의 공통점은 노사 간 자율적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쌍용차 경영진은 정리해고자들이 주축을 이룬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 간 자율적 문제 해결을 기대한다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 찾는’ 격이다. 쌍용차 사태는 개별 사업장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다.
제3의 중재기구는 노사 추천을 통해 학계, 노동계, 법조계 등 중립적 인사들로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쌍용차의 경영 상황 진단, 정상화를 위한 산업·정책적 지원 방안, 해고노동자 복직에 대한 로드맵 마련, 손해배상소송 철회 등 악화된 노사관계 걸림돌을 해소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이를 통해 노사의 자율적 협상을 촉진하는 구실을 담당할 수 있다.
물론 제2의 쌍용차 사태를 막으려는 사회적 지혜와 법 제도 개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유럽발(發) 경제위기에서 촉발한 세계경제 침체의 어두운 그림자가 연초부터 국내 산업현장에 드리워졌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정리해고는 불가피한 조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변변한 사회안전망을 구비하지 못한 우리 현실에서 볼 때 정리해고는 가정 파탄이며, 사회적 배제다. 정리해고가 단기적으로는 기업경쟁력에 도움이 될지 몰라도, 사회적 불안과 계층 간 갈등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기업 이익보다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쌍용차 사태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 미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리해고 오남용을 막으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에 대한 좀 더 엄격한 규정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정부(고용노동부)의 정리해고를 규제하기 위한 감독 강화, 사용자의 해고 회피 노력, 근로자 대표에게 협의와 대상자 선정 등의 절차에 관한 참여권 보장이 있어야 한다.
쌍용차 사태 이후 23명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리해고 제도가 낳은 사회적 병폐를 규제해야 한다. 쌍용차 사태는 성장 신화에 가려진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쌍용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