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노조 나무 곁에서, ‘낡은 생각’에 관해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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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노조 나무 곁에서, ‘낡은 생각’에 관해 생각하다

이주환 338 04.16 14:07

[연구소의 창] 노조 나무 곁에서, ‘낡은 생각’에 관해 생각하다



작성: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열심히 고민해봤지만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질 않았다. ‘현 정부가 노조의 불투명성과 부조리를 왜 이리 크게 문제 삼는가? 그래서 뭘 하려는가?’에 관해서 말이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 노조는 제법 오래전부터 법률이든 내부 규칙이든 잘 준수하는 쪽으로 변해 왔고, 또한 현 정권이 들어서기 직전이나 직후에 노조의 잘못이 사회적 이슈로 된 적도 없었다. 그런데 현재 정권의 고용노동부는 △임금체불 △불공정채용 △직장 내 괴롭힘 △포괄임금 오·남용 △부당노동행위 등 소위 “5대 불법·부조리”와 같은 선상에서, 혹은 그보다 더 긴급하게 노조를 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부 자원의 효율적 사용 측면에서 이래도 괜찮은 걸까? 노조의 불투명성이나 부조리를 개선하면 임금체불이나 직장 내 괴롭힘 등과 같은 문제를 개선하는 것보다 더 큰 공익이 실현되는 걸까? 아닌 것 같다.


노조 간부가 최익현씨인가


합당한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만 늘어나서 고민의 방향을 바꿨다. 이를테면 ‘생각에 관한 생각’을 해봤다. 도대체 이런 추진전략을 구상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이 사람들이 노동조합과 겹쳐서 떠올리는 심상(image)은 무엇일까? 그랬더니 신빙성은 없지만 그럴듯한 이야기가 하나 만들어졌다. 재미 삼아 들어보시라.

고용노동부 「2023년도 주요업무 추진계획」 자료는 ‘노사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 ‘노조 회계 투명성 제고’와 ‘노사(노조) 부조리 척결’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내 생각에 이러한 진단과 처방이 만들어지려면 다음과 같은 전제적 인식이 필요하다. 첫째, 노조는 법률에 따라 운영돼야 하는 조직이지만, 노사관계 활동 과정에서 종종 부조리를 일으킨다. 둘째, 노조를 운영하는 간부는 법률을 지켜야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 이를 종합하면 ‘노조 간부는 노동자로부터 걷은 조합비를 횡령하려는 성향이 있고, 이들은 더 많은 개인적 치부를 위해 노동자를 노조에 강제 가입시키는 부조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요컨대 현재 정부의 노조 전략을 구상한 사람들은 노조 간부를,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 나오는 1980년대 부패한 세관공무원 ‘최익현’씨와 겹쳐 보는 것 같다. 척결해야 할 내부의 ‘나쁜 놈들’로 보는 것 같다. 이러면 정부 방침이 맥락적으로 이해된다.

그러고 보니 현재 정권이 노조를 대상으로 추진하는 전략은, 제재 강도나 범위는 차이 나지만, 앞에서 언급한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 진행된 ‘정화조치’와 논리적 골격이 거의 같다. 1980년 8월 21일,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군부의 노동청은 이른바 「노동조합 정화지침 전달」이라는 공문을 한국노총과 산하 조직에 보냈다. 골자는 노조 활동을 통해서 부당하게 재산을 축적한 간부를 몰아내고, 그러한 활동의 통로가 된 조직을 폐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정화조치로 인해 처음에는 당시 산별노조의 임원 12명이 물러났고 지역단위조직 160개가 폐지됐다. 다음에는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간부 191명이 노동계 밖으로 쫓겨났다. 여기에는 오늘날 ‘1970년대 민주노조’라 부르는 조직의 간부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법치’와 ‘정화’, ‘회계 투명성 제고’와 ‘부당치부 재산 환수’ 비슷하지 않나? 혹시 현 정부에서 노조 정책을 구상하는 사람들은 40년도 더 된 낡고 부실한 틀로 오늘의 세상을 보고 있는 걸까? 아니길 빈다. 이러한 틀로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노동조합은 과일나무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혼자서 떠올려 본 것이긴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진짜 큰일이다. 그리하여 노파심에서 한마디 덧붙인다. 나는 현 정부 관계자에게 노조를 대할 때 마음속에 ‘과일나무’를 그리라고 권하고 싶다. 토양(사람들)으로부터 다양한 자양분(자금, 지식, 인정, 지지 등)을 받아 성장하고, 동시에 토양의 유기성(사회적 연대와 신뢰)을 강화하여 비바람이 몰아쳐도 유실되지 않게 하며, 결국에는 모두에게 안식이 되는 아름다운 꽃과 이로운 결실(보편적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 노동시장 형평성 제고 등)을 만들어내는 과일나무 말이다. 과일나무가 생태계의 유기성과 지속 가능성을 위해 필요하듯, 노조는 국민경제의 건강한 발전과 사회통합을 위해 활성화되어야 한다. 정부가 머릿속에서 허상을 몰아내고 제대로 된 인식 틀을 재구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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