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제노동자들은 왜 노동조합과 공제회를 같이 설립하려 하는가

노동사회

봉제노동자들은 왜 노동조합과 공제회를 같이 설립하려 하는가

0 5,397 2019.01.21 05:25
청계피복노조 창립 48주년 기념일에 서울봉제인노동조합 창립 
 청계피복노조 48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11월 27일 청계천에서는 서울봉제인노동조합(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서울봉제인지회)이 2년여에 걸친 창립준비를 마치고 서울봉제인의 권리 찾기 대장정 돌입을 선언했다. 
 서울봉제인노동조합 이정기 지회장은 “오늘 우리는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려던 청계피복노조의 역사를, 다시금 한땀한땀 재봉질로 이어가려 서울봉제인노동조합을 설립합니다. 봉제노동자 전태일은 이제 ‘조합원 전태일’로 되살아나 봉제인의 권리를 찾는 대장정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서울봉제인노조는 서울시와 협동조합, 마을공동체, 영세사업주,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함께 ‘봉제공제회’를 통해, 봉제인 스스로 ‘공정한 생산과 복지’를 위한 대안을 만들어가기로 결의했다.
 서울봉제인노동조합은 창립선언문을 통해 “반세기가 흘렀지만 봉제 노동의 현실은 사실 그다지 변한 게 없다. 30년 전 코트 공임 7천 원은 아직도 그대로다. 봉제산업과 봉제노동 현장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여전히 산적해있다”며, “청계천변 다락방의 애국자들이 노동조합을 세우고, ‘노조할 권리’와 함께 ‘노조할 이유’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서울봉제인노동조합은 ‘서울시-사업주-노동자’ 3주체의 상시적인 협의기구 구성과 ‘사회적협약 체결’을 제안하고, 봉제공동사업단과 서울봉제인노조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대해나갈 계획이다.   
 그동안 봉제공동사업단 사업에 참여해 온 문종찬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은 “봉제인들의 권리 신장이 봉제산업의 활성화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서울 도심제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봉제산업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봉제 종사자들의 일자리와 노동인권을 책임지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파리바게뜨지회, 네이버지회, 넥슨지회, 스마일게이트지회, 카카오지회 등 화섬식품노조 소속 ‘청년지회’에서도 이날 지지 연대 성명을 내고, “돈을 벌기 위해 상경을 했던 어린 봉제노동자가 누군가의 부모, 혹은 조부모가 되는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코트 한 벌 만드는 데 받는 임금이 제자리걸음이었다는 사실을 서울봉제인노조 출범 전에는 미처 몰랐다”며, “선배님들이 노동자로서 당당히 길을 걸을 수 있는 서울봉제인노조 설립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반세기 전 전태일 열사의 희생이 결코 헛된 일이 되지 않도록 선배님들과 함께 걸어가겠다”고 밝혔다.
 
 
봉제공동사업단을 중심으로 한 2년여에 걸친 연대사업
 2017년 초 구로구근로자복지센터(구로, 금천), 우리동네노동권찾기(동대문), 성북구노동권익센터(성북), 노동자마을카페(영등포), 서울동부비정규노동센터(성동), 전태일재단(종로, 중구), 일과 건강(중랑), 서울노동권익센터, 화섬식품노조가 함께 ‘9만 봉제종사자를 위한 봉제공동사업단’을 구성했다. 특히 봉제 주요밀집지역에 있는 지역 노동단체, 노동환경조직, 자치구단위 및 광역단위 노동중간지원조직, 그리고 전태일재단이 힘을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2017년 3월 31일, 평화시장 앞 전태일 다리에서 9만 봉제인 권익향상을 위한 공동사업단 스타트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봉제산업 노동실태 조사와 근로조건 및 작업환경 개선 △봉제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사업 △노조 조직화와 봉제노동자 권익향상을 위한 법제도 개선 활동 △봉제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개발과 정부 및 지자체 차원의 지원협약 추진 △일상적 노동 상담과 생활법률 상담사업 등을 진행해왔다. 특히 노동환경개선 및 권익향상을 위해 봉제종사자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진행한 월 1회 공동캠페인과 당사자 집단심층면접(FGI) 사업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실천과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2018년 5월 2일, 봉제공동사업단은 전태일재단, 서울노동권익센터, 화섬식품노조와 함께 ‘가칭 서울봉제지회(=전태일노동조합) 공동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공동준비위원회에서 당사자 중심의 서울봉제인지회 창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한 것은 장시간 노동에 묶여있는 당사자의 처지와 조건을 감안한 결정이었다.
 2차 년도인 2018년에 봉제공동사업단 진행한 사업과 주요 내용은 노동조합 창립을 위한 정책토론회 개최, 10인 이하의 영세사업장단위 사업주 가입 허용 등을 담은 노조의 자격규정, 현장별 분회가 아닌 지역별 분회,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사람에 한해 간부 출마자격 허용, 교통방송 캠페인 및 프로그램 개설을 통한 홍보방안, 자치구 단위 마을 및 사회적 경제 활동단위의 참여 방안, 서울시 노동협력관실과의 민관소통 창구 개설 등이다. 특히 2018년 10월 12일에는 서울지역 풀뿌리 조직 간담회를 통해 가칭 ‘봉제인의 친구들’(서울봉제포럼)을 결성하고 지속적인 자치구 단위 연대를 모색하기로 한 것이다. 자치구 단위의 지속적인 호혜적 관계망은 그 자체로 봉제인들을 현장과 지역의 주인으로 다시 나서는 과정에서 더없이 중요한 사회적 자원이기 때문이다. 
 봉제공제회 건설방안과 관련해서는, 법제도적인 한계, 규모의 문제, 국내 및 해외 사례 등  체계적으로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봉제공제회 TF를 별도로 구성하여 운영했다. 또한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사회연대기금 등 사회적 경제 주체들과, 법제도적인 과제, 규모의 문제, 다양한 주체들의 경험을 토대로 한 발제와 토론을 중심으로 두 차례 간담회도 개최했다. 서울봉제인노조 창립을 앞두고는 좀 더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 봉제공제회 추진지원단으로 전환했다. 앞으로 봉제공제회 추진지원단은 그 자체로 협력채널인 동시에, 민·민거버넌스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수행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서울지역 도심제조업 봉제산업과 노동현실에 대한 이해와 분석
 봉제공동사업단은 서울연구원에 있는 김묵한 박사의 연구(김묵한, 「서울시 도시형소공인 육성방안 연구」, 서울연구원, 2017)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김 박사와 함께 봉제공동사업단 정책워크숍을 개최하면서 전반적인 산업정책과 서울지역 도심제조업, 특히 9만여 명이 넘는 ‘도심제조업’ 봉제산업과 봉제노동 특성에 새삼 주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봉제산업은 10인 미만 사업장인 영세사업주가 90%에 이르며, 가족노동, 장시간노동, 객공구조 등이 특징이다. 또한 봉제산업이 사양화되고 있고, 영세한 사업시스템, 노령화된 노동인구 등 전반적인 봉제산업 구조에 대한 대책(공정임금, 공정단가, 일감 및 마케팅, 교육전수, 청년층 유입 등)이 필요하다는 데도 이견이 없다. 더불어 봉제산업의 특성상 사용자 및 노동자의 경계가 다소 불투명한 점, 그리고 서울시 봉제집적지역이 구로, 금천, 동대문, 중랑, 성북, 종로뿐만 아니라 중구 신당동, 용산구 만리동 등 서울 전역에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는 현상과 원인에도 새삼 주목하게 되었다. 김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봉제산업은 더욱 소규모 영세화되고 있지만, 종사자 수는 줄어들지 않고 미세하고 늘어나고 있다. 이 문제는 향후 서울시 산업정책 제안에 중요한 근거로 볼 수 있다.
 봉제공동사업단은 봉제산업의 문제를 단순히 사용자와 노동자, 자본과 노동이라는 양자구조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비단 봉제산업 뿐만 아니라 서울시 주요 도심제조업인 귀금속, 인쇄, 가죽, 수제화 산업에 대해서도 동일하거나 유사한 접근과 시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앞서 말한 특성으로 봉제산업은 일반적인 개별사업장별 교섭이 아니라 서울시, 사업주 협회, 서울봉제지회가 함께 상설적인 3자 협의기구 및 3자 협약을 통해 해결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잠정적 결론과 대안을 내리게 되었다. 더불어 봉제종사자들의 다양한 이해요구와 실제적 지원, 혜택 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봉제노동조합과 봉제공제회 동시병행추진이라는 방안 역시 봉제산업과 노동구조에 대한 분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봉제종사자 역시 생산자, 노동자인 동시에 시민이자 소비자라는 점에 주목하고자 했다. 봉제공제회 추진 지원단 구성 및 운영을 위해 생활공제회에서 퇴직공제회, 안산의 일하는사람들의 생활공제회 좋은이웃, 건설근로자공제회, 일본 사례 등을 조사연구 하였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영세한 사업체의 규모, 봉제산업 내 다양한 직종, 객공, 프로모션 업체, 제작 및 판매 시장 구조 등을 감안해볼 때, 공정임금, 공정단가, 일자리 수요와 공급, 청년층 유입, 교육 및 인력재생산시스템, 다양한 생활지원서비스 등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봉제산업 전반 시스템의 투명성도 필요하다. 특히 봉제산업 사업장이 서울시 전역에 산재되어 있어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할 수 있는 온라인플랫폼 구축도 필요하다.
 
 
봉제노동자들에게 공제회 모델에 기반한 노동조합은 어떤 의미일까
 공제회 모델에 기반한 노동조합을 고민하게 된 것은 봉제산업에 대한 현실적 진단에서 출발했다. 서울지역의 봉제산업은 영세하다보니 사업주들은 사용자성과 노동자성의 경계에 있으며 인건비 절감을 위해 본인이 재단사, 미싱사 혹은 시다를 겸하고 있다.
 일반적인 기업구조에서는 노조가 만들어지면 노조가 단체협상이나 단체행동을 통해 임금과 복지를 쟁취 혹은 보장받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1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 종사하는 객공과 직원들은, 자신을 고용하고 있는 영세사업주와 전통적인 자본가-노동자 구도를 통해 이윤에 대한 분배를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로 인해 이들은 장시간 노동을 통해 자신의 임금을 보전해왔다. 임금(혹은 단가)은 오르지 않고, 복지를 보장해줄 수 없으니, 장시간 노동을 통해서 본인이 원하는 만큼의 임금소득을 만들어왔던 것이다. ‘일할 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자’라는 생각때문에 봉제산업에서 4대보험이나 퇴직금 제도가 제대로 뿌리내릴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공정임금’, ‘공정단가’에 대한 요구가 당연함에도 당사자들 대부분이 ‘너무나 비현실적인 요구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2018년 서울지역 봉제종사자 집단심층면접(FGI)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봉제공동사업단은 ‘과연 노동조합이 실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였고, 노동조합의 핵심목표를 공정임금-공정단가, 봉제산업활성화를 위한 ‘서울시-사업주-노동조합’ 3자 상설협의체를 제안하고, 사회적 연대협약(산별협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삼고자 했다. 동시에 9만 봉제종사자들의 생산, 소비, 복지 생태계는 단순히 노동조합의 힘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봉제공제회를 통해 서울시와 협동조합, 마을공동체, 영세사업주,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함께 대안을 찾아보고자 했다. 특히 공정한 생산과 복지를 위한 ‘봉제공제회’ 추진은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노조할 이유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공제회를 위한 첫걸음으로 마을공동체, 사회적 경제, 비영리민간영역과 협업하여 필수적인 공제서비스 사업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한겨레두레협동조합과 ‘행복한 천원상조’, 녹색병원과 함께 ‘근골격계질환 맞춤형서비스’, 지역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과 야간진료, 휴일진료 연계, 사회연대기금과 소액무이자 혹은 저리 대출서비스 등과 기초적인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봉제사업단은 2018년 8월29일 “9만 서울봉제인, 노동조합 창립을 위한 정책토론회–공제회 모델과 민관·민민 거버넌스를 통한 조직화 방안”을 통해 이러한 고민들을 공론화시켰다. 김묵한 박사는 이날 토론회에서 “봉제산업은 노동집약적이므로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져야 하고, 판로 지원·교육·공공 인프라 구축이 이뤄져야한다”고 제안했다. 김일영 위즐 대표는 “도심 제조업은 지역 자원과 마을공동체를 활용해 일자리 창출·도시재생에 기여하지만 공간이 없는 경우도 많다. 공동작업장, 쉼터 등 스마트 앵커류의 시설 설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지방 정부를 포함한 지역사회가 도심 제조업 관련 혁신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서울 도심 제조업의 최대 규모를 점유하는 봉제 산업의 민관 거버넌스 경험은 선도적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민관 거버넌스에 필요한 4가지 요소로 ①노동의 혁신 ②지역의 혁신 ③행정의 혁신 ④거버넌스 혁신을 꼽았다. 또한 “봉제 노조와 공제회가 활발히 활동하는 동시에 정부가 산업지원정책을 추진한다면 노동, 일자리, 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정책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이원보 서울시 명예시장은 “노동조합에는 정치적, 공제적, 경제적 기능이 있는데 우리나라 노동조합에는 상부상조 형태의 공제적 기능이 부족하다”며 공제회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봉제인 조직을 확대하는데 공제회가 필요조건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공제회는 자치원리에 입각해서 상호부조를 위해 회원이 출자금을 내고 민주적 절차에 따라 운영하는 단체나 법인이다. 우리나라에도 건설공제, 교원공제, 군인공제 등 97개 이상의 공제가 실행중이다. 임의 공제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단체도 많다. 그러나 역시나 핵심은 실제 당사자들의 요구에 필요에 적합한 공제상품을 설계하고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봉제인노동조합과 봉제사업단은 내년 5월 봉제공제회 결성을 목표로 고민과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당사자 중심의 수요조사, 주요 공제상품 기획, 서울시 조례 개정, 제정을 포함한 제도 개선방안, 단계별 사업 계획, 주요 밀집지역 조사연구 교육 조직 사업, 공제회 규모화, 소액대출을 위한 중간지원조직, 공제회 대표상품 기획, 공제회 시범서비스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
 봉제산업에 대한 비관적 전망, 정부지원정책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경험, 장시간 노동, 상인과 프로모션에 의한 부당한 단가 깍기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은 특히 조직화를 더욱더 어렵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봉제노동자들의 노조의 어려움은 주문에 따라 달라지는 일정하지 않은 노동시간과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활동 여력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할 때이다. 봉제노동은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시간이 곧 소득이고 임금이고, 수입이기 때문이다.
 조직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신뢰할 수 있는 공신력이라고 본다. 캠페인은 의미도 있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특히 초기 핵심주체를 찾기는 굉장히 어려운 과정이었다. 당사자 조직화과정에서 봉제종사자의 자존감, 노령화 등의 문제로 특히나 세심하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공신력이 있는 공중파, 라디오, 홍보대사 등에서 봉제종사자들의 등장을 안내하는 것도 절실히 필요했다.  
 화섬식품노조와 봉제공동사업단은 지회 간부와 조합원들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여전히 방법과 대안을 찾고 있다. 특히 창립 이후에는 자주적인 노조의 힘(상근자, 사무실, 사업역량, 조합원 확대 등)을 갖추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역량, 교육, 재정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있다. ‘조직건설 그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혁신과 대안적 관점에 서서 새로운 길, 새로운 조직사례, 협업을 통한 모범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의지와 관점을 견지한다는 게 호락호락한 문제만은 아니다. 
 또 하나 쉽지 않은 일이 사용자, 마을공동체, 사회적 경제, 자치구지원센터, 서울시 행정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상호 이해를 높여가는 과정이다. 여전히 ‘벽은 높고, 관성은 힘이 세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
 
 
세상을 알면 길이보이고, 사람을 만나면 길이 열린다
 전태일 열사 50주기가 2020년으로 다가왔다. 노동운동과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마을공동체, 지역공동체, 자치구지원센터, 서울시행정과 사업주 조직 등이 함께 협업구조를 통해, 사회혁신사례를 창출하고,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의 권리신장, 당사자들의 합의에 기초한 서울시 산별협약의 사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이 바로 오늘의 전태일 정신과 청계피복노조의 계승과 혁신이지 않을까. ‘봉제공제회’를 바라보는 주변의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아니 오히려 그러하기 때문에 함께 고민하고 토론, 연구해나가야 할 이유가 더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화섬식품노조는 봉제산업 및 노동구조에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고자 3년의 시간을 함께했다. 당사자 조직·교육 사업에 집중적인 자원과 인력을 투여하고, 진정성에 기반한 일관된 노력을 기울일 때만이 비로소 노동운동, 노동조합운동이 시민들과 함께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청계피복노조 창립 48주년 기념일이 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 서울봉제인노동조합의 노조창립일이 될 수 있도록 애써주신 모든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창립선언문]
시다의 꿈, 전태일의 염원, 9만 서울 봉제인의 권리 선언,
서울봉제인노동조합을 설립합니다!!
 
오늘 우리는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려던 청계피복노조의 역사를 다시금 한땀한땀 재봉질로 이어가려 서울봉제인노동조합을 설립합니다. 봉제 노동자 전태일은 이제 조합원 전태일로 되살아나 봉제인의 권리를 찾는 대장정에 나설 것입니다.
 
반세기가 흘렀지만 봉제 노동의 현실은 사실 그다지 변한 게 없습니다. 30년 전 코트 공임 7천원은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혹사당했던 ‘어린 시다’들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종종걸음 쳐서 지하실 비좁은 작업 의자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합니다. 
 
봉제산업과 봉제노동 현장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습니다. 장시간 노동과 객공시스템이 만연된 현장은 하청의 하청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단가 인하 경쟁으로 저임금을 강요받는 사슬구조를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4대 보험 사각지대의 봉제 현장에 신규 진입하는 청년노동자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제 그 청계천변 다락방의 애국자들이 노동조합을 세웁니다. 
 
서울봉제인노조는 봉제인들의 권리 신장이 봉제산업의 활성화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공정임금·공정단가, 안정된 일자리와 물량, 마켓팅, 그리고, 노동건강권과 근로환경 개선 문제는 봉제업에서는 개별 사업주나 노동자가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입니다. 서울 도심제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봉제업을 활성화시키고, 봉제 종사자들의 일자리와 노동인권을 책임져야 할 단위는 어느 일방이 될 수는 없습니다. 봉제업에서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책임져야 할 단위는 바로 「서울시-사업주-노동자」 3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서울봉제인노조는 ‘노조할 권리’와 함께 ‘노조할 이유’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공정한 생산과 복지를 위한 ‘봉제공제회’ 추진은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노조할 이유를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서울시와 협동조합, 마을공동체, 영세사업주,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함께하는 봉제공제회 추진은 전태일의 풀빵연대 정신을 잇는 실천 과정입니다.
 
‘세상을 알면 길이 보이고, 사람을 만나면 길이 열린다’ 했습니다. 서울봉제인노조는 조합원을 비롯한 9만 서울봉제인 한사람 한사람의 생각과 염원을 담은 길을 만들고, 마침내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시다의 꿈, 전태일의 염원, 9만 서울봉제인의 권리 선언, 
‘서울봉제노동조합’ 창립을 선언합니다!!
 
 2018년 11월 27일 (청계피복노조 창립 48주년 기념일)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서울봉제인지회


  • 제작년도 :
  • 통권 : 제2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