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나마 사회운동이나 시민운동은 시민들로부터 약간의 환대와 지지를 받아 왔기에 이번 촛불 혁명도 가능했던 게 아닐까 여겨진다. 개인적으로는 촛불 혁명의 시발이 과거 민주노총이 주관한 노동세력의 민중총궐기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노동운동이 시민들로부터 괴리되어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노동조합 교육업무를 관장하면서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내부와 시민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였다. 조합원 교육에 인문학을 접목하면 우리 노동자들이 깊이 사유하게 되고, 그러면 이전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의 노동운동방법을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운동 자체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세련된 운동 방법들이 개발되고 시민들에게 노동운동이 친숙하게 전달됨으로써 기존의 인식도 변화하지 않을까 여기며, 『앞으로 10년, 대한민국 골든타임』의 저자이자 인문학자인 김경집 교수를 초청해 조합원 교육에 최초로 인문학을 투입하였다. 노동자와 인문학의 만남의 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조합원들의 반응은 가히 뜨거웠다. 강의 내용 중에 활동가나 운동가들의 투쟁이나 쇠파이프, 화염병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대신 ‘생각을 바꾸어라’, ‘99%와 연대하라’는 이야기에 조합원들은 새로운 인문학적 접근과 시도였다며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지지를 보내 왔다. 강사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당시 교육장에서 강연했던 주제들이『앞으로 10년, 대한민국 골든타임』에 고스란히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더 많은 주제들이 추가되어 있어서 생동감 있게 읽었다. 저자는 이 책을 출판한 후 필자에게 한 권 보내 주었는데, 직접 붓펜으로 “民主主義와 正義가 春夜喜雨처럼!(민주주의와 정의가 춘야희우처럼)”라는 글까지 적어 주었다. 이 글이 최근의 시국을 반영한 듯하여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제도 개선보다 중요한 사고와 사상의 진화
전 교수이자 인문학자인 저자는 민주주의와 수평사회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책을 일곱 장으로 구성했다. 1장과 2장에는 전체적인 성찰을 통해 시대정신과 미래의제에 대해 함께 사고하자는 주제를 담았고, 3장과 4장에서는 21세기를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수평사회의 당위성과 미래가치를 도출하는 사고의 전환을 다루었다. 후반부인 5장에서 7장은 “세대, 교육, 문화 등에서 소소한 듯하지만 우리가 생각만 바꾸면,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며 실천의제로 만들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제도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고와 사상의 진화”라면서 “그것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고 확장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제시했다.
이 책은 체계적인 이론을 토대로 하지 않고 있다. 대신 그는 몇 개의 ‘점’들을 제안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 점들을 이어서 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다른 수많은 가능성들을 각자 찾아보고 논의해서 실현가능한 사회적 의제와 미래 가치를 도출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책은 21세기가 열린 지 십수 년이 지났는데도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끔찍하고도 태연하게 과거로의 퇴행을 일삼고 있는 대한민국에 새로운 변화를 이야기한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성장시키고 진화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지난 10년 동안 정의는 우롱 당했고 악이 선을 유린하는 지경에 이른 지금의 현실을 방치해서는 안 되며, 인문학적 관점에서 그 실천적 대안들과 의제를 제시하며 새로운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평사회로 가는 길
저자는 지난 세기가 철저하게 수직사회였다면 앞으로의 세기는 수평사회로 전환하는 것이 시대정신이고 미래의제라고 말했다. 필자도 노조의 수직적 구조로 인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집단지성이 중시되지 않고 명망가나 직위의 높음이 강조된다. 지침이 강요되는 하향식, 일방식 결정의 구조적 틀의 문제를 수평적‧민주집중적 의사결정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노동운동의 미래도 더 암울하지 않을까 연관 지어 보았다. 사회도 노조도 구호로만 외치지 말고 빨리 수평적으로 전환하고 진화해야 한다.
지난 세기의 정경유착과 과도한 노동의 희생으로는 이제 더 이상 경제전망, 미래전망도 밝지 않다. 경영자들은 사고를 전환해야 하고, 기업구조도 민주적 조직으로의 완전히 개편되어야 한다. 수평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조건은 다름 아니라 정의를 지키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보수주의자냐 진보주의자냐의 논란보다 우리는 먼저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바로 미래를 창출하는 멋진 대한민국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수평사회는 개인의 확장이며 공감과 공생으로 개인의 발전이 모아져서 사회와 국가가 발전한다는 것이 민주주의와 수평사회의 기본 철학이다.”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피해자와 똑같이 분노할 수 있을 때 정의는 실현된다.”
저자는 그리스의 개혁적 정치가이며 시인인 솔론의 말을 인용하면서 공감과 공생에 바탕을 마련하는 수평사회의 민주주의가 중요한 자산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한국사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20세기의 낡은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제 패스트(Fast-Moving) 사회에서 퍼스트(First-Moving)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든 조직이 온전한 수평사회로 전환하고 진화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미래가치가 창출돼야 제대로 된 일자리도 생기고 시민들의 삶도 개선된다”고 주장한다.
노동은 내 존재의 근거이자 삶의 방식
특히 노동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한 부분도 눈에 띈다. 몸의 근육을 이용하거나 정신의 근육을 사용하거나 우리의 일은 모두 노동이고, 그래서 우리 모두는 노동자라는 것이다. 바른 노동의 권리가 마련되지 않는 한 정상적인 사회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노동법, 노동인권, 양성평등에 관한 교육을 시급히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교육과정 중에 과연 노동에 관한 법률 및 철학에 대한 교육내용을 학습하고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노동활동가이며 노동인권강사인 필자에게 특히 와 닿는 내용이다.
주체적으로 연대해서 사는 삶이 사회적 삶
학교는 연대를 배우고 진리와 정의를 실천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며, 동시에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지도를 그리는 법을 익히는 곳이다. 학교는 민주주의를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는 못자리이다. 이를 토대로 미래가치인 창의성과 집단지성의 힘이 발휘된다.
책은 학생들이 정의롭고 공정한 교육을 받고, 인격적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기초가 만들어질 때 건강한 미래 사회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파업으로 인한 불편을 의연하게 감내할 수 있는 공감능력과 연대의 사고를 가르치고 또 가져야 건강한 사회인 것이다. 즉 공감능력은 통합과 조정의 능력이다.
도서관은 사회재교육의 최전선
도서관은 미래의 삶을 결정하고 시민의 삶을 연대할 수 있는 최적의 거점이다. 퍼스트무빙 프레임의 미래사회에서 창조, 혁신, 융합의 패러다임을 가장 먼저 생산하고 소비하는 시끌벅적한 시장이 바로 도서관이어야 한다. 도서관이 시민사회의 공동체적 삶의 중심지이며 미래의 대안을 모색하는 거점이 될 때 그 사회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미래의 대한민국 사회를 정상화시킬 중요한 교두보가 될 것이다.
필자와 저자와의 첫 만남은 도서관에서였다. 이 책에서도 “도서관이 중요한 대안이다”라고 말한다. 도서관 강연에서 저자를 처음 만나 알게 되었고 거기서 같이 강연을 들은 분들과 “도서관은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을 개화시키는 것”이라는 가치를 인식하게 됐다. 강연 후 함께 연대하는 독서모임(완보완심)을 만들었다. 활동가로서 지역 공동체 연대의 틀을 도서관에서 만든 것이다.
10년 후 대한민국, 바뀔 수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99%의 사람들이 연대하고, 민주주의 가치와 수평사회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생각을 바꾸면 ‘10년 후 대한민국’은 바뀔 수 있다.
또한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생각을 바꾸면 10년 후 즈음에는 노동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도 바뀌어 있을 것이다. 실제 이 책을 받고 제목을 읽자마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10년, 노동운동 골든타임… 가만히 있으면, 변하지 않으면 끝이다.”
건강하고 정의로운 세상, 민주주의의 대한민국, 노동이 대우받는 세상, 공정하고 당당한 경제발전 등 많은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우리의 자식들과 청년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멋진 대한민국의 토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절망이 아닌 희망, 체념이 아닌 의지, 분노보다는 열정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