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노동자도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다"

노동사회

"케이블 노동자도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다"

구도희 0 5,362 2014.11.07 02:03
 
노숙농성을 시작한지 100일째. 희망연대노동조합 씨앤앰(C&M)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이하 케비지부)의 이경호(46) 마포지회장은 한숨을 짧게 내쉬더니 “이렇게까지 농성이 길어질 줄 예상 못 했어요”라고 말했다. 
“한 달 정도 걸릴 거라고 예상했어요”라는 이 지회장의 바람과 달리 씨앤앰 비정규직 노조의 노숙농성은 지난 10월15일로 100일째를 맞았다. 노조가 임단협 체결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을 시작한 것이 6월10일이니, 파업을 시작한 이후로 넉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계절이 초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동안 ‘노동인권 실현’, ‘생활임금 쟁취’라고 쓰인 이 지회장의 ‘몸자보’도 색이 꽤 바랬다. 
 
<사진: 씨앤앰 케이블방송 비정규직지부의 이경호 마포지회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씨앤앰에서 일하지만 씨앤앰 노동자는 아닙니다”
이 지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함에는 ‘티엔씨넷’ 소속이라고 쓰여 있었다. 케이블 수리기사로 일한지 17년이 넘었다는 이 지회장은 씨앤앰의 협력업체인 티엔씨넷에서 5년 정도 일했다.  씨앤앰의 협력업체에서 일한 지는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래도 급여는 10년 전이나 현재나 크게 다르지 않다. 
 
“씨앤앰과 관련해서 일한지 10년이 지났어요. 실력은 쌓였지만 받는 급여는 10년 전과 같아요. 퇴직금도 쌓이지 않고요. 1년 마다 고용계약을 새로 맺거든요. 그게 17년째예요.”
 
그동안 월급이 올라본 적이 없다고 했다. 최저임금은 매년 올랐지만, 그의 월급은 17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근무환경이 좋아진 것도 아니다. 이 지회장은 “케이블업계는 한 달에 두 번 쉬면 잘 쉬는 거예요. 가족들과 여행 한 번 가기 힘들어요. 돈 문제, 근로시간 문제 어느 것 하나 힘들지 않은 것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급여도 오르지 않고, 영업 목표는 과다했다. 특히 목표를 채우지 못하는 달에는 60여 명이 모인 아침 전체회의에서 “잘못했습니다”라고 크게 외치며 강제로 반성해야 했다. 모욕적이었다. 
정해진 퇴근 시간도 없었다. 고객이 부르면 저녁 9시가 돼도, 주말이어도 수리를 나가야 했다. 고객이 저녁 10시에 왜 수리를 못 오냐고 화를 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협력업체 사장들은 “관할지역이니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 결국 오전 8시 반까지 출근했지만, 일은 아무리 빨라도 오후 6시 전에는 절대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안전화나 절연장갑 등 업무에 반드시 필요한 보호 장비도 지급받지 못했다. 전신주에서 일하다가 떨어져 부상을 당해도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그래도 참아야 했다. 부당한 점을 얘기하면 하청업체 사장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해고시킨다고 했다. 자연히 노동자들은 침묵했다. 해고되지 않기 위해서는 억울함을 꾹꾹 억눌러야 했다. 이 지회장 역시 그러했으나 억눌린 감정은 결국 폭발했다. 그래서 2013년 2월 노조 설립과 함께 노조에 가입했고, 부지회장을 맡다가 1년 여 전부터는 지회장을 맡게 됐다고 했다.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었다.” 그것이 노조의 가입 이유였다. 
 
<사진: 씨앤앰의 대주주인 MBK가 입주한 파이낸스센터 앞 노숙농성장의 모습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씨앤앰 노동자들은 왜 노숙농성을 하게 됐는가
케비지부의 결성은 케이블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자극이 됐다. 동종업계의 같은 처지에 있던 노동자들에게 노조 설립이 소식이 빠르게 전파됐고, 한 달여 후에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이하 케비티지부)가 결성됐다. 성과도 있었다. 지난해 협력업체 노사협상 과정에서 원청인 씨앤앰이 협력업체 노동자 1인당 고정임금 35만 원을 지급하고, 원‧하청 노조에 5억 원의 복리후생기금과 3억 원의 사회공헌기금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1년 만에 뒤바뀌었다. 씨앤앰의 최대 주주인 외국계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가 지난해 말 씨앤앰을 매물로 내놓으면서부터다.
 
씨앤앰은 수도권 최대 규모의 복수종합 유선방송사업자(MSO)다. 업계 전체로는 CJ헬로비전, 티브로드에 이어 3위 사업자다. 그러나 씨앤앰의 매각가는 IPTV라는 경쟁자의 등장으로 MBK와 맥쿼리의 예상만큼 높지 않았다. 결국 씨앤앰은 인건비 등 고정비용을 줄여 매각가를 높여야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눈엣가시가 됐으며, 협력업체는 계약해지됐다. 더욱이 협력업체를 인수한 신규업체들은 노동자 전원 고용승계에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씨앤앰 협력업체 노동자 109명이 계약만료로 해고됐다. 이 지회장에 따르면 케이블업계는 협력업체가 계약 해지돼도 사장만 바뀌고 노동자들은 자동 승계되는 것이 관례인데, 이번에는 신규업체가 면접을 통해 노동자들을 선별 고용하면서 노조원만 재계약이 되지 않았다. 결국  마포지회 조합원은 이 지회장을 포함해 28명 전원 해고자가 됐다. 
 
현재 노조가 씨앤앰의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입주한 서울 광화문 근처의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는 이유다. 이 지회장은 “원청인 씨앤앰을 움직이는 것이 MBK예요. 원청에서 협상을 타결해달라는 얘기를 해도 MBK가 듣지를 않는대요”라고 말했다. 이처럼 매각될 씨앤앰이 해고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대주주인 MBK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 노조의 입장이다. 
 
길에서 지새운 70일, “집 나가면 개고생이예요” 
노숙농성장을 찾은 이날 농성장을 지키는 이는 이 지회장과 조합원 한 명 뿐이었다. 이 지회장은 “노숙농성은 한 조당 15~20명으로 이뤄진 8개조가 월요일에서부터 일요일까지 돌아가면서 해요. 오늘 노숙 당번이라면 하루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에 농성장에서 잔 뒤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이곳을 지키는 거죠. 그런데 계속 농성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교육을 받으러 가기도 하고 협력업체 앞에서 시위를 하거나 선전전을 해요”라고 설명했다. 
 
이 지회장은 100일의 노숙농성 기간 동안 70일 정도를 농성장에서 잤다. 가족들 보기 미안해서 일부러 노숙 당번을 더 섰다는 그다. 이 지회장은 “저보다 더 많이 잔 사람도 있어요. 저는 두 번째로 많은 정도예요”라고 말하며 겸연쩍어했다. 그러나 지회장이라고, 노숙 당번을 많이 섰다고 노숙농성이 쉬울 리 없다. 
 
“흔한 말로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고 하죠? 딱 그래요. 아침에 농성장에서 일어나면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요. 대로변인지라 밤에도 시끄러워서 잠을 잘 못자고 매연 때문에 목이 아파요. 바로 옆에서는 경찰차가 감시도 하고요. 요새 일교차가 커서 많이 힘들어요. 그래서 몸이 아픈 사람이 많아요.”
 
이 지회장은 장남인데다가 자녀가 2명이기에 가족들도 걱정이 많다고 했다. “집이 난리예요. 일단 애들 생계비 문제도 있어서 와이프한테 투쟁이 끝나면 잘 하겠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어머니도 사연을 아신 뒤로는 3일에 한 번씩 전화를 하세요. 제가 3년 전에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어머니가 ‘이제 그만큼 했으면 되지 않느냐’며 전화하실 때마다 우세요. 결국 어머니 얼굴 뵈면 마음이 흔들릴까봐 지난 추석 때도 집에 내려가지 못했어요” 어려운 사정은 조합원들도 다르지 않다. 아내의 만류로 농성장에 2~3일간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이 지회장은 “그래도 2~3일 있다 집에서 도망쳐 나와요. 이 사람들이 그만큼 한이 맺혀 있거든요”라고 덧붙였다. 
 
케이블 노동자들의 외침,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었다”
‘한 맺힌’ 해고 노동자들은 결국 지난 9월18일 파이낸스센터 20층의 MBK파트너스 사무실을 찾았다. 윤종하 MBK파트너스 한국법인 대표에게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만난 것은 MBK파트너스가 아닌 경찰이었다. 경찰은 4시간에 걸쳐 스크럼을 짠 노동자들을 한 명씩 떼어내는 방식으로 60여 명을 연행했다. 해고자 문제를 해결하라는 외침에 돌아온 것은 건조물 침입 및 업무방해 혐의였다. 
 
“면담하러 간 건데 경비가 얼마나 철저한지 4시간 만에 다 끌려 나왔어요. 우리를 구속시키려고 아직도 그 건 가지고 수사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조합원들의 투쟁의 기운이 강한 정도가 아니라, 분노하고 있고 악에 받혀 있어요.”
 
이 지회장은 “문제를 풀기 위해 해볼 것은 다 해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자들은 아스팔트 위에서 비닐을 지붕삼아 풍찬노숙을 하고 있다. 원청인 씨앤앰과 대주주인 MBK가 나서지 않는다면, 이들의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노숙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 가족한테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현장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일하고, 내가 일한 만큼 받고, 고용안정을 받고 싶어요” 이 지회장의 소박한 바람이다.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었다”고 외치는 노동자들이 광화문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을지로의 SK텔레콤 본사 앞에는 그 계열사인 SK브로드밴드 노동자들이 노숙농성을 하고, 여의도의 쌍둥이 빌딩 앞에는 LG유플러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숙농성을 한다.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달라며 노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생활임금 보장, 다단계 하도급 금지, 원·하청 공생협력과 고용보장, 지역방송 공공성 강화를 요구했다. 원청은 노동자들의 적법한 요구에 귀를 닫고 오히려 이들의 일감을 빼앗고 있다. 비정규직 900만 명 시대. 노숙농성장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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