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주의 노동운동의 위기와 정책연대

노동사회

이념주의 노동운동의 위기와 정책연대

편집국 0 3,649 2013.05.29 09:45

최근 치러진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은 노동계뿐만 아니라 소위 진보진영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렇지만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사건이었다. 보수진영은 대선에 이어 총선에서도 압도적으로 승리하면서 표정관리에 들어간 듯 말을 아끼는 반면, 상대적으로 진보진영은 양대 선거패배를 분석하느라 연일 지면을 달구고 있다. 특히 노동계는 그동안 정치세력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해오던 중 연말연초의 두 번에 걸친 선거를 통해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거둔 측면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잃을게 없을 정도로 나락에 떨어진 측면이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 한국노총은 ‘정책연대’를,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했지만 그 결과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기만 하다. 이 글에서는 노동운동이 ‘위기’라 일컬어지는 상황에서 한국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그간의 노력과 특히 대선, 총선을 거치면서 이루어져 왔던 정책연대에 대하여 한국노총에서 발표된 문건들을 참조하여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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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노총은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를 통해 4명의 후보가 지역구에서 출마했다. 3월 13일 한국노총 중앙정치위원회 모습  ▶ 한국노총 ]

정치세력화 걸림돌이 된 ‘이념주의 노동운동’의 위기

우리나라 경제는 해방 이후 절대빈곤에 허덕이던 후진국에서 벗어나 GDP 기준 세계 13위, 외환보유액 세계 5위가 되었다. 하지만 국가경쟁력 순위는 2007년 국제경영개발원(IMD) 기준 세계 29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IMD 기준으로 60개 국 중 60위, 세계경제포럼(WEF, 일명 다보스포럼) 기준 117개 국 중 81위를 나타내, 세계에서 가장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듯 경제규모나 사회발전에 부합하지 못하고 조합원들이나 국민들로부터 호응받지 못하면서 노동운동의 위기가 운위되고 있다. 그 주요 이유는 노동운동이 사회적 의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상황에서 시민운동이 주요 의제를 선점하는 한편, 기업별노조 체제하에서 공장 울타리 안의 문제들에 한정된 노동운동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와 80년대 독재권력 앞에 무력했던 어용노조시대의 관성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1987년 민주화투쟁 이후 기득권을 확보해 온 이념주의 노동운동세력이 혼재하면서, 정상적인 노동운동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점 또한 무시 못 할 이유일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큰 문제는 아직도 1980년대 구식 이데올로기에 갇힌 노동운동을 ‘정통’으로 보는 시각이다. 물론 1987년 민주화투쟁 이전 개발독재 시절 자주성이 박탈된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군사정권에 맞서 정치 민주화에 기여하는 한편, 대중적 노동운동으로 설 수 있도록 기여한 바는 매우 크다. 하지만 아직도 ‘독재 대 반독재’, ‘민주 대 반민주’식의 이데올로기에 갇혀 ‘전무 아니면 전부’식의 이분법적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둘째, 이러한 노동운동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합리적인 노동운동을 어용으로 몰아붙이기 일쑤고 선명성을 강조하고 조직 내의 비판을 차단하는 한편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투쟁 일정을 미리 정해놓고 싸우는 전투적 노동운동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셋째, 그 결과 활동가 상층 중심의 노동운동으로 변질되어 조합원과의 괴리가 심해져 전 세계 최저의 노조 조직률(약 10.3%)을 나타내고 있다. 

결국 이러한 노동운동의 위기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며 급기야 진보정치 진영의 분열과 국민들의 외면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치세력화 경험과 역사 토대로 선택된 ‘정책연대’ 

노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이듯이, 노동조합의 역사는 정치참여 투쟁의 연속이었다. 한국노총 역시 정치활동의 확장 및 정치세력화를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여 왔으며,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한국노총 내 치열한 내부토론 과정을 거쳐 정책연합을 담보하는 친노동자 후보였던 김대중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 선거에서 한국노총은 50년만의 평화적 정권교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2002년 대선에서 한국민주사회당 창당과 대선후보 불출마로 실패의 경험을 잠시 겪기도 하였으며, 2004년 총선에서는 녹색사민당을 만들어 △전 국민 무상의료 실시, △대학까지 무상교육 실시, △사회적 일자리 100만 개 창출 등 3대 핵심공약을 걸고 뛰어 들었으나 역시 쓰라린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초창기 정치세력화에 대한 시행착오는 한국노총의 정치사업에 든든한 자양분이 되었다. 

이러한 자양분을 바탕으로 한국노총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정책연대를 추진했다. 정책연대란 특정정책의 실현을 도모하기 위하여 상호 간의 협의하에 제휴나 행동통일을 결정하는 일로서,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방법이다. 노조가 정책연대 후보와의 정책협정을 체결하여 노동자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직접 정치를 하거나 정당을 만들어 정치에 참여하는 정치세력화는 말처럼 쉽지 않다. 기존의 보수정치권이 노동자와 국민을 정치와 정당 그리고 선거를 위한 동원의 수단으로 보고 그들의 정치참여와 선거를 제한함으로써,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높은 진입장벽을 쳐 놓았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정당이 국회 진입에 성공했지만 정치경험이 없는 정치신인으로서의 한계와 역량부족, 관성화된 노동운동 방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노동자를 비롯한 다수 대중과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고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정치세력화의 가장 좋은 방법은 독자정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독자정당이 없고 현실적으로 독자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차선책으로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후보를 선택하여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번 대선, 총선 공간에서 정책연대를 결정하였다.

이러한 정책연대를 통해 선거를 유리하게 진행시키기 위하여 공동전선을 펴고, 선거 후의 정책수행에서 정책연대를 토대로 정국에 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책연대에 의하여 결정된 통일 행동이나 제휴는 상호 준수가 의무화되지만, 정책연대 밖의 문제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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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총선에서 한국노총은 4명의 당선자르르 냈다. 4월 14일 있었던 '제18대 총선 한국노총 출신 당선자 합동 기자회견' 모습  ▶ 한국노총 ]

2007년 대선 및 2008년 총선 정책연대 경과와 결과 

한국노총은 2007년 2월28일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대의원대회에서 조합원 총투표를 통하여 정책연대 여부를 결정하기로 의결했다. 이후 4월10일 전국조합원 투표를 실시한 결과 76.2%라는 압도적 지지로 본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정책연대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임원들이 연중 전국을 순회하며 사업의 의의를 설명하고 조합원 교육에 매진하였다. 본부에서는 상임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정치기획단을 꾸려 차질 없는 실무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수십 차례에 걸친 산별 정치담당자회의 및 워크숍은 정책연대 승리의 든든한 뿌리가 되었으며, 중앙정치위원회, 회원조합대표자회의, 산별·시도본부 연석회의, 임시대의원대회 등은 본 사업의 민주성과 실효성을 담보해주는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이었다. 

모든 주체들의 역량과 노력이 결집되어 12월7일까지 전 조합원 투표가 실시되어 전국의 조합원 약 88만 명 중 약 50만 5천 명의 명부를 확보하여 투표한 결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42%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하였다. 이에 따라 12월10일 이명박 후보와 “한국노총의 10대 정책요구 및 회원조합 정책요구 답변서에서 밝힌 공약을 반드시 이행하며 재임기간 중 정례적인 정책협의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의 정책협약을 체결하였다. 이명박 후보는 12월19일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한국노총은 대선이 끝난 직후인 2008년 1월 말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할 한국노총 출신 출마예정자를 파악했다. 2월12일 정치에 관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중앙정치위원회를 개최하여, 대선 정책연대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한나라당을 지지키로 결의하는 한편 공천추천자 12명을 선정하였다. 그중 4명의 지역구 후보자 및 1명의 비례대표 후보자를 공천 받았으며, 그 후 2차례에 걸친 중앙정치위원회를 거쳐 세부적인 인력지원 및 후원회모금 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선거지원 사항을 의결하여 총력지원에 나섰다. 

총선 결과 서울 강서을에서 김성태 한국노총 부위원장, 경기 상록갑에서 이화수 경기지역본부의장, 부산 사하갑에서 현기환 전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비례대표 4번을 공천받은 강성천 자동차노련 위원장이 당선되어 총 5명의 출마자 중 4명이 당선되었다. 

다양한 세력에게 열려 있는 2017년 ‘영구적 정책연대’  

한국노총의 정책연대 사업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존재하며 승리의 깃발 뒤에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있다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의 심도 있는 정치학습 부재가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혹자는 내셔널센터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한국노총의 한계라고 선을 긋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평가와 비판이 모여서 우리의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우리는 시행착오를 부인하지 않으며, 우리의 정책연대 사업은 한국 노동자 정치세력화 역사에 분수령이 된 것은 분명하다. 

한국노총의 2007년 정책연대사업의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정책연대 사업은 차분히 그리고 치밀하게 준비해 나갈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2012년, 2017년에도 조합원의 총의에 따라 정책연대 대상후보를 결정할 것이다. 또한 한국노총은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운동’ 노선에 입각해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사회적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원칙을 실천하는 정당과 서로 협력할 것이다. 

아울러 한국노총은 2007년 정책연대를 기반으로 2012년의 대선을 치른 후, 다가오는 2017년에는 한국노총의 운동노선과 함께 할 수 있는 정당과 항구적이고 상시적인 정책연대, 즉 동맹을 맺을 것이다. 한국노총의 조합원들이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사회개혁노선을 추구하는 정당이 어떤 정당인지를 경험과 원칙에 입각해 판단해 줄 것으로 믿는다. 이러한 동맹의 대상으로는 한국노총을 적대시하지 않는 한 어떤 정당이나 정치세력도 배제되지 않을 것이며, 모든 문호는 개방되어 있을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2호